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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추억만들기 ] 김현식 추억 만들기

김 현식 추억만들기

가수 김현식은 누구 일까요 ?11월만 되면 김현식을 말할까요?
11월은 가수 김현식을 추억하게 하는 달이다. 그가 90년 11월 1일 사망했으니, 11월이 되면 김현식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글이 블로그에 올라오곤 한다. 그가 죽은 11월, 그 막바지에 김현식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그는 보성중학교 재학 시절 기타를 처음으로 접했다. 이후 명지고등학교로 입학해 밴드부에 들어갔으나 선배의 악기를 만진 죄로 혼내는 선배들과 싸움을 벌인 후 밴드부에서 쫓겨나 1학년을 마치기 전 가족들 몰래 자퇴서를 내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는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선배가수 이장희의 주선으로 음반제작에 들어갔으나 사업상 문제와 함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정식데뷔가 미뤄졌다. 그러다 4년 후인 1980년에 '봄여름가을겨울'을 타이틀곡으로 한 1집앨범을 발표했다. 이때 그의 목소리는 마지막 노래인 '내사랑 내곁에'와 달리 맑은 미성으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시도했다. 2년 후인 1982년에 결혼해 1983년 아들 김완제를 낳는다. 김완제씨는 현재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가수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이후 2집 타이틀곡인 '사랑했어요'를 발표해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밤무대 공연이 잦았고, 밤무대 최고의 가수로 부각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5년, 그의 1집 타이틀곡 제목이었던 '봄여름가을겨울'을 팀이름으로 한 그룹을 결성해 3집을 발표한다. 이때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는 김종진,전태관,장기호,유재하로 구성됐다. 김종진,전태관은 아직까지 봄여름가을겨울을 유지하는 멤버다. 유재하의 경우 음악적 견해가 맞지 않아 팀을 탈퇴하고 솔로로 음반을 발매했으나, 김현식이 사망하기 3년 전인 1987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불운의 가수였다(김현식이 사망한 11월 1일, 같은 날 사망했다). 3집의 경우는 밤무대를 벗어나 주로 라이브 극장등에서 공연을 하며 '블루스'로 음악적 색을 찾은 시기라고 한다.
그는 소위 말하는 언더그라운드형 가수로 인디음악계의 서태지 장기하처럼 매니아들이 많은 가수였다. 공연으로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가던 중, 1987년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전인권과 함께 구속되었다. 5개월 후 삭발을 한 채 팬들 앞에서 63빌딩에서 재기콘서트를 통해 다시 노래를 불렀다. 재기 이후 1988년 9월 4집을 통해 당시 최고가수에게 주어지는 제3회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을 받았다.

 

 

 

 

 

 

 

 


그대로 그 행복이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김현식의 잦은 밤샘 녹음,폭음,줄담배 등이 건강악화를 불러와 간경화라는 병을 안겼고, 이후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공연을 하며 전국각지를 돌았다. 건강이 안 좋은 상태로 6집 음반을 작업하던 중 1990년 11월 1일 자택에서 간경화로 사망했다.
그가 죽고나서야 발매된 6집 앨범 '내사랑 내곁에'는 그 어떤 앨범보다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그해 일간스포츠 제6회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그가 병상에서 즉흥적으로 노래한 곡들을 묶은 앨범들이 2차례 발매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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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딸기여왕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