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 (Hitchcock 2012)
스릴러 미국 98 분 홈페이지해외 www.hitchcockthemovie.com
감독 사차 지바시
출연 안소니 홉킨스 (알프레드 히치콕 역), 헬렌 밀렌 (알마 레빌 역), 스칼렛 요한슨 (자넷 리 역), 대니 휴스턴 (윗필드 쿡 역),제시카 비엘 (베라 마일즈 역), 토니 콜렛 (페기 로버트슨 역)
영화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의 내면적 고뇌와 작품 세계를 그리는 영화로 1959년 앨프리드 히치콕과 그의 아내 앨마가 은퇴를 할때즈음 불안해하기보단 영화 제작자로 젊은 시절 대담한 소재를 찾아가면서 히치콕의 다음 영화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다음 영화는 공포소설, 사이코를 적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앨프리드 히치콕은 불행히도 배우관리를 잘 못하여 인내심을 잃고 있을때즈음 자신의 친구가 자신의 작품에 공동작업을 유혹하게 되고 이 사건의 계기로 자신의 소설은 자신의 꿈을 괴롭혀만 가는데 . 그런 내용으로 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여지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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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1899-08-13 ~ 1980-04-29 영국
이 인물 최고의 작품새 이 인물 최악의 작품찢어진 커튼 메인정보소개/작품포토동영상인물 100자평명대사관련 게시물뉴스관련 영화인관련 Q&A 프로필데뷔1922년 영화 'Number 13'출생지영국 잉글랜드 런던 레이튼스톤 (Leytonstone, London, England, UK)별명Hitch, The Master of Suspense본명Alfred Joseph Hitchcock수상1938년 제4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감독상, 1967년 아카데미상 어빙 탈버그상, 1968년 제20회 미국 감독 조합상 공로상, 1972년 제2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평생 공로상기타사항1940년 <레베카>부터 자신의 영화에 까메오 출연, <구명 보트>에서 신문광고,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사진속 인물.인물소개알프레드 히치콕는 영화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스타감독일 것이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히치콕는 처음에는 상업영화의 대가로서,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영화매체의 시청각적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한 탁월한 형식주의자로 비평의 만신전에 들어섰다. 히치콕는 가장 상업적인 장르인 미스테리, 스릴러, 공포영화 장르에서 작업했지만 절묘한 기법으로 관객의 도덕 의식을 희롱하는데 장기를 보였다. 히치콕의 영화를 본 관객은 마음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그의 솜씨에 눌려 허우적거리며 재미와 공포를 절반쯤 섞은 감정을 맛봐야 한다. 히치콕의 영화에는 언제나 히치콕크다운 표식이 있다. 히치콕크는 서스펜스 영화를 만드는 법에 대해 수많은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그중 한가지가 '맥거핀 Macguffin'이다. 이건 관객이 줄거리 전개에 계속 헛다리를 집게 만드는 히치콕의 속임수 장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심하고 겁많았던 히치콕이 관객과 비평가를 마음대로 쥐었다 놨다 하는 스릴러-공포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이 됐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는 운명의 장난이다. 카톨릭계 학교에 다녔던 히치콕는 항상 어떤 나쁜 것에 관련되지는 않을까라는 소심한 생각에 질려 살았다. 어린 시절의 히치콕은 여행 지도,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정거장들, 뉴욕의 완전한 지형등을 암기하는 것과 같은 혼자만의 게임을 즐겼으며 10대 후반부터 영국 런던에 지사를 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 취직하면서 영화 일에 뛰어들었다. 거기서 그는 소도구, 편집, 각본등의 일을 하며 차근차근 승진했다. 각본, 편집, 소도구 미술 감독등의 일을 차례로 익혔다. 1925년에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협박 Blackmail>(1929년)때부터 영화감독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히치콕이 영국 시절에 만든 영화는 브제볼드 푸도프킨의 몽타주와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카메라 움직임을 결합한 가장 모범적인 영화로 평가받았다. 히치콕의 영국 영화에 주목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이 그를 할리우드에 불렀고, 1940년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안 폰테인이 출연한 <레베카Rebecca>의 감독으로 히치콕크는 할리우드에 무사히 입성했다.
히치콕을 추앙했던 영화감독 프랑소와 트뤼포는 히치콕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가 영국영화보다 강렬하고 성숙한 표식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사실 그의 대표작들은 다 미국 시절에 나왔다. <오명 Notorious>(1946), <의혹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1943), <이창 Rear Window> (1951), <현기증 Vertigo>(1958), <사이코 Psycho>(1960), <새 The Birds>(1962)등은 히치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대표작이고 현대 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사이코>에서 관객은 처음에는 돈을 훔치고 도망을 치는 여주인공 마리온과 동화된 뒤에 마리온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노만 베이츠에게 공감했다가 나중에는 마음 속에 죽은 어머니의 영혼을 감추고 있는 노만의 또 다른 자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히치콕의 이 복합적인 도덕적 감수성은 선과 악이 상호 연관되어 있어서 사실상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50년대에 처음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예술가' 히치콕을 발견한 이래 히치콕은 가장 널리 연구되는 영화감독으로 떠올랐다. 영국 출신의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지적 처럼 히치콕은 가장 대중적인 화법인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어법으로 동시대의 도덕적 무의식을 파고들면서 현대의 셰익스피어라 부를만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히치콕의 영화는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만으로 함축적인 의미와 감정을 축적하는 기교의 대가라는 점에서 우드는 그의 영화를 '순수영화 Pure Cinema'라 불렀다. 순수영화라는 말은 그럴 듯 했다. 히치콕 자신도 이 말을 자주 썼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시각적인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애썼다. "나는 문어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 생각은 철저히 시각적입니다. 도시의 거리나 교외를 묘사한 글을 읽을 때면 조바심이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나같으면 카메라로 그것을 보여주겠습니다."
살인을 즐길만한 것으로 보는 히치콕의 부조리한 유머 정신이 인간조건에 물음을 던지게 하는 형이상학적인 것인지, 자본주의와 냉전 시대와 가부장제 체제의 잘 만들어진 부산물인지를 따지기 위한 갑론을박은 늘 있었다. 그러나 히치콕은 이런 현상에 개의치 않았다. "어떤 영화들은 인생의 조각이라고 하지만 내 영화들은 케이크의 한 조각(piece of cake)이다."
스칼렛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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